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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종
최성종(동양문화연구소 부소장)
성균관 전 전례위원장
무형문화재 제 85호 석존(의례)부분 이수
성균관 유도회 서울금천지부 회장

우리나라 한국(韓國)의 정신(精神)에 관한 연구-도덕(道德)의 의의(意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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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6-05 09:26 조회3,3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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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덕(道德)의 의의(意義)

  사람이 만물(萬物) 중의 영장(靈長)인 까닭은 도덕(道德)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道德)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이 세상에 살아가는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법(理法)이요 준칙(準則)이다. 그러면 도덕(道德)이란 과연 무엇이며, 그 근원(根源)은 무엇인가?
  도덕(道德)이란 하늘의 명령(命令)인 나의 본성(本性)에 따라 실천(實踐)을 함으로써 내 마음에 얻은 것이며, 동시(同時)에 사람이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이법(理法)을 이르는 말이다.
  중용(中庸)에 보면 “하늘이 명령하신 것을 본성(本性)이라 하고,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고 하며, 도를 닦는(修=品節) 것을 가르침이라고 한다.”라고 하여 사람이 태어날 때에 하늘(天)로부터 명령(命令)을 받았으니 그것을 인간의 본성(本性)이라고 한다고 말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본성(本性)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도덕(道德)이라고 하고, 그 도덕(道德)을 알기 쉽게 풀이하여 준 것을 성인(聖人)의 가르침(敎)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하늘의 명령(天命)과 인간의 본성(性)과 사람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도덕(道德)과 성인(聖人)이 경전(經傳)을 통하여 가르치신 교육(敎育)이 본래(本來) 일치(一致)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것을 보면 도덕(道德)의 근원(本源)은 천(天)이고, 도덕(道德)의 기준(基準)은 나의 본성(本性)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본성(本性)만 따라서 살면 그것이 바로 도덕(道德)적인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타고난 본성(本性)은 이(理)라고 한다. 그리고 이 본성(本性)에서 가장 순수(純粹)하게 나온 마음을 양심(良心)이라고 하는데, 이 양심(良心)은 기(氣)이이다. 그러나 양심(良心)은 기(氣) 중에서 가장 순수(純粹)한 것으로 양심(良心)을 따라서 살아가면 그것이 바로 도덕적(道德的)인 삶이 되는 것이다.
  다만 육체적(肉體的)인 기질(氣質)의 욕구(欲求) · 욕망(慾望) · 욕심(慾心)에 의하여 나의 본성(本性)이나 양심(良心)이 오염(汚染) 되었을 때에는 그 기준(基準)이 흔들리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이 가르치신 경전(經傳)을 통하여 나의 본성(本性)이나 양심(良心)에 오염된 것을 제거(除去)하고 인격수양(人格修養)을 함으로써 언제나 나의 본성(本性)이 기준(基準)의 역할(役割)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고장난 나침반(羅針盤)을 믿고 길을 가는 것과 같아서, 오염(汚染)된 본성(本性)이나 잘못 된 양심(良心)을 믿고 잘못 살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 경전(經傳)을 통한 도덕(道德) 교육(敎育)의 필요성(必要性)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 사전(辭典)에 보면 도덕(道德)은 "인륜(人倫)의 대도(大道),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道理) 및 그에 준(準)한 행위. 곧 자기의 행위 또는 품성(品性)을 자기의 양심(良心)내지 사회적 규범(規範)으로써 자제(自制)하며, 선한 일과 바른 일을 행하며, 악한 일과 부정(不正)한 일을 하지 않는 일. 관습(慣習) 풍습(風習)에 연관하며, 정사(正邪) 선악(善惡)의 표준임.”이라 하기도 하고, 또 "사람으로서 마땅히 갖추고 닦아야 할 행동 규범.“ 이라고도 하였고, 또 "사회생활에 있어서, 사람이 사람으로서 행하여야 하는 이법(理法)과 그것을 자각하여 실천하는 행위. 어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있는 그 성원(成員)의 사회에 대한, 혹은 성원 서로에 대한 행위를 규제(規制)하는 규범의 총체. 법률처럼 외면적 강제력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적인 것임. 사회 체제와 함께 변함.”이라고 정의(定義)를 하고도 있다.

  도덕(道德)은 “인륜(人倫)의 대도(大道)라던가, 사람이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이법(理法)이라고 하여, 원리적(原理的)인 해석(解釋)은 하고 있으나, 그 도덕(道德)의 근원(根源)은 밝히지 못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도덕(道德)을 사회(社會) 체제(體制)에 따라 변(變)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중국(中國)의 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는 "도덕은 사회의식 형태의 하나로, 사람들이 공동생활 및 그 행위의 준칙과 규범. 도덕은 일정한 사회의 경제의 기초에 따라 결정되며 아울러 일정한 사회 경제의 기초가 된다. 시대가 같지 않고 계급이 같지 않으면, 같지 않은 도덕관념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였다.
  공산주의(共産主義) 국가인 현대 중국에서는 도덕(道德)의 원리적(原理的)인 해석(解釋)은 없어지고, 도덕(道德)을 사람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데의 준칙(準則)정도로 풀이하면서, 도덕(道德)을 시대(時代) 사회(社會) 계급(階級) 경제(經濟)에 따라 변화(變化)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은 서양(西洋)에서 Morality라는 단어(單語)가 동양(東洋)에 들어온 후에, 현대(現代) 사회(社會)에서 널리 쓰여 지고 있으며 학교에서 교육하고 있는 오늘날의 도덕(道德)이란 단어(單語)에 대한 정의(定義)인 것이다.

  서양(西洋)에서 사용하는 Morality라는 말은 원래(原來) 관습(慣習)이나 법률(法律) 같은 것을 잘 지키는 것을 의미(意味)하는 말로 사용된 것인데, 그것을 일본인(日本人)이 잘못 알고 번역(飜譯)한 것을 한국(韓國)이나 중국(中國)에서 그대로 사용(使用)하는 단어(單語)중의 하나이다.
  원래(原來) 우리 조상들이 예로부터 경전(經傳), 또는 전통적(傳統的)인 교과서(敎科書)에서 사용하던 도덕(道德)이란, 하늘의 명령(命令)인 본성(本性)을 따르는 것이므로, 변(變)하지 않는 진리(眞理)의 이법(理法)을 뜻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Morality의 번역어(飜驛語)로 사용하고 있는 도덕(道德)이란 관습(慣習)이나 법률(法律)을 잘 따르는 것을 Morality{도덕(道德)}라고 하기 때문에 도덕(道德)이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하는 것으로 생각고 사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도덕(道德)이란 풍습(風習)이나 법률(法律)보다 높은 개념(槪念)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도덕(道德)이란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이법(理法)이 아닐 뿐만 아니라 악법(惡法)이나 악(惡)한 관습(慣習)은 고쳐야 함으로 따르는 사람이 바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면 도덕(道德)이란 단어의 뜻을 전적(典籍)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예기(禮記)에서 보면 "도덕(道德)과 인의(仁義)는 예(禮)가 아니고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 정현(鄭玄)의 주소(注疏)에서 “도(道)라고 하는 것은 물(物)이 통(通)하는 것을 이름이고, 덕(德)이라고 하는 것은 이치(理)를 얻음을 일컫는 말이다. 인(仁)은 은혜를 베풀어서 사물(物)에 미치는 것이고, 의(義)는 마루재고 ?끊어서 마땅함에 합치(合致)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사람이 이 네 가지 일을 행하려면 예(禮)를 쓰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으므로 예(禮)가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도덕(道德)이란 만사(萬事)의 근본(本)이요, 인의(仁義)는 대중(大衆)이 행하는데 큰 연고(緣故)가 된다. - ‘주례(周禮)에 이르기를 도(道)는 재예(才藝)가 많음이요, 덕(德)은 능히 몸소 행함이다. 이것은 노자(老子)의 도덕(道德)이 아니다. - 지금 도덕(道德)이라고 이르는 것은 크게 말하면 만사(萬事)를 모두 포함(包含)하고, 작게 말하면 사람의 재예(才藝)와 선행(善行)이다. 작고 크고 말할 것 없이, 모두 반드시 예(禮)로써 행할 수 있다. 예(禮)는 도덕(道德)의 도구(道具)이기 때문에 예(禮)가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재예(才藝)와 선행(善行)이 도덕(道德)이 될 수 있는 것은, 몸에 재예(才藝)가 있어서 일을 개통(開通)할 수 있으면, 몸에 아름다운 선(善)이 있고, 이치(理)에 얻음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도덕(道德)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여 도덕(道德)과 인의(仁義)와 예(禮)를 비교하여 설명하면서 도덕(道德)이 만사(萬事)의 근본(根本)임을 밝힌 바 있다.
 
당(唐)나라 한유(韓愈)는 “무릇 내가 이른바 도덕(道德)이라고 하는 것은, 인(仁)과 의(義)를 합하여 말한 것이니, 천하(天下)의 공언(公言)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일찍이 노자(老子)는 “대도(大道)가 폐(廢)한 후에 인의(仁義)가 생겨났다.”라고 하여 도(道)보다 인의(仁義)를 차원(次元)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또 "도(道)를 잃은 후에 덕(德)이 있고, 덕을 잃은 후에 인(仁)이 있고, 인을 잃은 후에 의(義)가 있고, 의를 잃은 후에 예(禮)가 있게 되었다.”라고 하여, 도(道)·덕(德)·인(仁)·의(義)를 차등화(差等化)하여 도(道)가 가장 중요하고 다음이 덕(德)이고, 다음이 인(仁)이고, 다음이 의(義)이고, 다음이 예(禮)라고 본데 대하여, 한유(韓愈)는 비판적(批判的)으로 논박(論駁)하여, 인의(仁義)가 바로 도덕(道德)임을 강조(强調)하였던 것이다.
  주자(朱子)는 중용(中庸)의 제1장(第一章)의 주석(注釋)에서 "도(道)라는 글자는 노(路)자와 같다. 사람과 만물이 각각 그 본성(本性)의 자연을 따르면, 일상생활을 하는 사이에 각각 마땅히 행하여야 할 길이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곧 이른바 도(道)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도(道)는 본성(本性)을 따라 마땅히 행하여야할 길이라고 풀이하였고,
 
그리고 논어(論語)의 위정이덕(爲政以德)장의 주석(註釋)에서 "덕(德)이라고 말하는 것은 얻음이니, 도(道)를 행하여 마음에 얻음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여 덕(德)이란 도(道)를 행하여 마음에 얻음이 있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즉 도덕(道德)이란 원래, 천명(天命)인 인간의 본성(性)을 따라서 행하여 내 마음에 얻음이 있는 것이니, 그 내용은 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이는 Morality의 번역어(飜驛語)로서 도덕(道德)이란 단어의 뜻과. 전통적인 도덕(道德)이란 단어(單語)의 개념(槪念)에는 분명히 차이(差異)가 있으므로 구분(區分)하여 보지 않으면 그 뜻을 바르게 이해(理解)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금년에 75세 이니 1937년생이다. 1945년 광복(光復) 될 때 초등학교 2학년 때이다. 초등학교 2학년 되는 나에게 일본(日本) 국어(國語) 선생이 일본(日本)의 정신(精神)인 대화혼(大和魂)은 “야마도다마시”라고 하였다. 나는 국어선생에게 “야마도다마시”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말하기를 천황폐하(天皇陛下)에게 무조건(無條件) 복종(服從)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묻기를 천황폐하(天皇陛下)가 잘못하여도 무조건(無條件) 복종(服從)하는 것이 “야마도다마시” 냐고 하였더니 그는 말하기를 천황폐하(天皇陛下)는 신(神)이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고 하였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사육신(死六臣)이 충신(忠臣)이냐? 신숙주(申叔舟)가 충신(忠臣)이냐고 물었더니 그 국어 선생은 얼굴을 붉힐뿐 대답이 없었다. 나는 다시 물으니 그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물론 나는 “야마도다마시” 라는 대화혼(大和魂)은 충(忠)인데 이를 잘못 가르치면 국가(國家)가 망(亡)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조(朝鮮朝)의 세조(世祖) 당시(當時)에는 사육신(死六臣)은 역적(逆賊)이오 신숙주(申叔舟)는 충신(忠臣)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증손자(曾孫子) 당시(當時)에 이미 사육신(死六臣)은 복원(復元)되어 충신(忠臣)이라 하였고 신숙주(申叔舟)는 그 자손(子孫)들도 오히려 부끄러워하였다.
  그러한 역사(歷史)도 잘 모르는 일본인(日本人)들이 일본(日本) 정신(精神)을 잘못 가르치기 때문에 뒤에 망(亡)할 것을 예언(豫言)한 것이 어린 나였다.
  일본 천황(天皇)의 이름으로 뒤에까지 죄 없는 노약자(老弱者)를 우리나라 사람 당시 2000만 명 중에 700만 명을 36년에 걸쳐 죽였고, 중국사람 당시 10억 중에 죄 없는 노약자(老弱者)를 7년 동안 3000만 명을 죽였다고 하는데 그 때에 간(諫)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니 일본정신(日本精神)을 잘못 가르친 명치유신(明治維新) 때 소화(昭和)에 이르러 망(亡)할 것을 알았어야 하는데, 몰랐기 때문에 1945년 8월 15일 날 일본천황(日本天皇)이라는 소화(昭和)가 꿇어앉고 연합국(聯合國) 측(側)에 항복(降服)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그 원인(原因)도 모르는 일본인(日本人)들이 지금도 한국의 독도(獨島)는 일본(日本) 땅이다, 중국(中國)의 조어도(釣魚島)는 일본(日本) 땅이다. 소련(蘇聯)의 열도(列島)는 일본(日本) 땅이다. 하며 망언(妄言)을 일삼고 있다고 하니 조금도 동정(同情)할 수 없는 나라요 민족(民族)이 일본(日本)인 것이다.
  그러면 전통적(傳統的)인 도덕(道德)의 내용인 인(仁)과 예(禮)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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