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마당

역사칼럼

문화재 보호에 앞장서는 국민

살수에 흐르는 기백, 을지문덕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5-08-02 17:06 조회8,060회 댓글0건

본문


<b>을지문덕(乙支文德)<br><br>
<img src=\"/data_img/b-2-1.jpg\">
■ 생몰년 미상 <br>
■ 고구려 영양왕때의 장군</b><br>
▶ '을지'의 유래<br>
‘을지’라는 성에 대하여 고구려 관위명(官位名)의 하나인 우태(于台)와 같이 연장자·가부장(家父長)을 뜻한다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을’만이 성이요 ‘지’는 존대의 접미사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또, 선비족(鮮卑族) 계통의 성인 ‘울지(尉遲)’씨와 같은 것으로 보아 을지문덕을 선비족계통의 귀화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br>
《자치통감》에는 위지문덕(尉支文德) 이라고도 표기하였다. 《삼국사기》 을지문덕전에서는 그의 세계(世系)를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해동명장전 海東名將傳》에는 “을지문덕은 평양 석다산(石多山) 사람이다.”고 하였다.<br><br>
▶ 수나라군의 총퇴각 '살수대첩'<br>
612년(영양왕 23) 수나라는 양제(煬帝)의 총 지휘 아래 대규모의 군단을 편성하여 고구려 침공을 감행하였다. 이때 육군은 고구려의 주요군사거점인 요동성(遼東城: 지금의 遼陽)을 공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중문(于仲文)·우문술(宇文述) 등을 지휘부로 한 30만5000명의 별동부대를 구성하여 해군과 더불어 고구려의 국도인 평양성을 공격하고자 하였다.<br>
별동대가 압록강 서쪽에 집결하였을 때, 을지문덕은 왕명을 받들어 거짓 항복을 청하여 적진으로 들어가 군량이 부족한 수나라군의 약점을 간파하고 돌아와서 수나라군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작전으로 수나라군과 충돌 때마다 패주하는 척하면서 평양성부근까지 유인하여 수나라군을 극도로 지치게 만들었다.<br>
또한, 전의를 상실하고 후퇴의 구실을 찾던 수나라군에게 “신통한 계책은 천문을 헤아리며 묘한 꾀는 지리를 꿰뚫는구나. 싸움마다 이겨 공이 이미 높았으니 족한 줄 알아서 그만둠이 어떠하리(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라는 희롱조의 오언시를 보내어 회군을 종용하는 한편, 수양제에 대한 영양왕의 알현 등을 조건으로 거짓항복을 청하여 퇴각의 구실을 만들어 주는 척 하면서 일대 반격전을 전개하였다. <br>
살수(薩水:지금의 청천강)를 건너는 수나라군을 배후에서 공격, 수장 신세웅(辛世雄)을 죽게 하고 불과 2,700명만을 살려 보내는 대전과를 거두어, 수나라군의 총퇴각과 고구려의 승리를 가져다 준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이를 ‘살수대첩’이라 한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7-28 13:4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