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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건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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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5-08-02 15:57 조회28,0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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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시조 주몽 이야기 입니다.


만주에 부여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북부여왕은 늙었으나 아들이 없어 산천을 두루 다니며 제사를 드리던 중 곤녕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말이 큰돌을 보더니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러보니 한 어린아이가 개구리 모양으로 쪼그리고 있었는데 등에는 금빛이 찬란하였다.

왕은 하늘이 주신 아들이라 생각하고 크게 기뻐하며 아이 이름을 \"금와\"라고 하였다. 어느 날 천제(하느님)는 꿈에 나타나 \"이 곳은 내 자손이 나라를 세우려고 하니 너희는 동해 바닷가 가섭원이라는 곳 에 도읍을 정하라.\" 라고 하여 북부여왕 해부루는 가섭원으로 나라를 옮기고 이름을 동부여라고 하였다. 그러자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 북부여에 새로이 나라를 세웠다. 한편 동부여에는 해부루왕이 죽자 금와가 왕이 되었다.

어느 날 금와왕은 사냥을 하다가 깊은 숲 속에서 유화라는 하백의 딸을 발견했다. 유화는 해모수라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청년의 꼬임에 빠져 허락도 없이 혼인을 했다가 해모수가 없어지자 유화는 그의 아버지 하백에게서 버림을 받게 되었다고 하였다.

금와왕은 기이하게 여겨 유화를 데려다 작은 방에 가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화의 방에 햇빛이 비치고 큰 알을 낳게 되었다. 왕은 해괴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알을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러나 알 주위를 지나는 모든 동물들이 피해가고 오히려 알을 품어 주었다. 그래서 왕은 알을 깨뜨리려고 했으나 깨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알은 다시 유화에게로 돌아오고 알에서는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는 외모가 출중하고 영특하였으며 체격도 좋았다. 특히 활을 아주 잘 쏘았다. 그래서 그 아이 이름을 주몽이라 지었다.(그 당시에는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주몽이 모든 면에서 뛰어나자 금와왕의 왕자들은 주몽을 시기하고 질투하였다. 금와왕은 왕자들의 말을 듣고 주몽을 마굿간지기를 하게 하였다. 현명한 주몽은 명마를 굶겨서 삐쩍마른 말을 만들었는데 왕은 그 말을 필요없다고 하여 주몽에게 주었다.

그러나 금와왕의 맏아들 대소태자는 계속 주몽을 죽이려 하자 주몽은 어머니와 아내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임신한 아내에게 칼을 두동강 내어서 증표로 주면서 \"일곱 모난 돌 위 소나무 아래 둘것이니 아들이 나거든 그 증표를 찾아서 오 게 하라.\" 고 말하고 오리, 마리, 협부의 세 친구와 함께 명마를 타고 부여를 떠났다. 그런데 대소태자의 군사가 쫓아 왔지만 강에서 자라와 물고기들이 다리를 만들어 주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으며 졸본 부여에 도착하게 되었다.

졸본 부여의 왕은 주몽의 뛰어남을 알아보고 둘째 공주를 시집보내어 사위로 맞아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게 하였다. 그리하여 주몽은 나라 이름을 '고구려'하고 나라를 세우니 이때가 주몽의 나이 22살이었으며 자신의 성을 '고'라고 지어 '이름이 '고주몽'이 되었다.


출처 : http://user.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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