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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호에 앞장서는 국민

나무에 새 생명을...목조각장 박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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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8-02-15 13:26 조회11,9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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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4회 전승공예대전(1989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법상(法床). 느티나무를 재료로 하여 2년 동안에 걸쳐 제작하였다.

목아(木牙) 박찬수(朴贊守)씨는 목아 불교 박물관을 건립하고 우리나라 불교 목조각의 선구자로서 잘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목조각의 장인(匠人)이다. 무엇보다도 전통문화를 사랑하고 우리 전통 문화를 계승 보전하여 세계에 알리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는 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박찬수씨는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다.
\"화전민들이 사는 동네에서 태어났어요.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야한다는 말이 있는데 아버님은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저를 데리고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버님께 정말 감사드려야 하지요. 이사를 와서 김성수 선생님을 만났으니까요.\"

배고팠던 시절, 고구마 한 개라도 먹기 위해 목조각가 김성수 선생의 공방에서 1년 6개월 동안 허드렛일을 하면서 처음 나무 깎는 것을 시작하였다는 박찬수씨.
\"처음으로 만든 게 팽이였어요. 참 재미있더라구요. 그때부터 썰매 등 여러 가지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제 재능을 알아보셨는지 하루는 선생님이 부르시더니만 중학교에 진학하여 공부를 하라 하시더라구요.\"

중학교에 진학한 박찬수씨는 미술 교사였던 조소과 출신의 이운식(조각가, 강원대학교 명예교수)선생을 만나게 되었고,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셨는데 저는 돛을 달고 노를 젓는 사람이 있는 배를 모두 나무를 깎아 만들어 제출했어요. 선생님이 제 작품을 보시더니 어디서 사왔냐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더니 그때부터 저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목조, 석조, 브론즈 등 조각에 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어요.\"라며 지난날을 회상하듯 박찬수씨는 창밖 풍경을 보며 말한다.

이운식 선생이 전근가면 선생을 따라 전학을 가면서까지 조각에 대한 열정을 쉬지 않던 박찬수씨는 1974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일본에서 불상을 만드는 가토 선생으로부터 불교불상 등 불교 미술에 대한 공부를 하였다.

\"일본에 있으면서 전통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일본과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를 비교하는 작업을 하다보니 고대 문화와 조각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게 되었어요. 또한 내 자신이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불교 박물관을 건립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구요.\"라고 박찬수씨는 말한다.
일본에서 돌아온 박찬수씨는 전통문화재 복원수리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지난 1985년 정부로부터 문화재수리 기능 보유자(조각 제 772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목조각 분야에 대한 맥이 끊긴 상태여서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수많은 사찰과 문헌, 스님들을 찾아다니며 우리나라 불교 목조각의 전통을 잇기 위한 외롭고 고달픈 작업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런 수행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난 1989년에는 전승공예대전에 '법상(法床)'을 출품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맞이하기도 한다.

\"법상은 통도사 대웅전에 있는 팔각형의 법상을 기본으로 하여 많은 문헌과 스님들의 증언을 토대로 3년 동안 공력을 들여 완성한 것입니다.\"

법상이란 스님이 대중 앞에서 설법을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고려시대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것을 박찬수씨가 재현해 낸 것으로, 고려시대의 고승 보조국사 지눌은 법상을 두 세번 치며 \"천 가지 만 가지가 모두 이 속에 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입적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박찬수씨의 법상을 보는 사람들은 그의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에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오랜 세월동안 몰두해온 박찬수씨의 전통문화에 대한 재능과 노력 등을 인정이라도 하듯 지난 1996년에는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최초로 목조각 분야 중요무형 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나무를 처음 만지기 시작하여 10년이 지나니 나무의 결이 보이더라구요. 결을 따라 섬세하게 조각하는 작업을 또 10년 동안 하다 보니 좋은 나무가 보이구요.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많아요. 좋은 나무를 찾아 세계를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이젠 나무를 보면 이 나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느껴집니다.\"라며 나무에게 새 생명을 심어주는 작업을 하고 있는 박찬수씨.

목조각 인생 45년, 작업의 세월만큼이나 수없이 많은 상처로 인해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한다. 이젠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술인이지만, 그는 우리 전통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불교 박물관을 비롯하여 국내 최초로 국가 인정 4년제 도제식 학교인 '목아 전통 예술학교'를 운영하며 대학교와 전통학교 등에 강의를 다니며 우리나라 목조각 교육과 전통문화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 전통 문화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화입니다. 하지만 이를 널리 알리지 못하고 표현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전통 문화의 우수성을 잘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 정말 아쉽습니다. 문화재 기능 보유자나 명장 같은 장인들이 앞장서서 해야 할 일입니다.\"

전통 문화란 단지 옛 것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박찬수씨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우리의 기본 문화와 정서가 담긴 작품을 세계적인 흐름과 조화를 맞추어 발전시켜 나가면 우리의 미술은 가장 우수한 미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장인은 단순히 옛날 물건을 그대로 만드는 기술자가 아니라 우리 전통 문화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선구자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해맑게 웃는 동자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욕심 없고 거짓 없는 동자 같은 마음을 가지려하기 위함입니다. 순수함을 간직한 동자야말로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구요.\"라고 말하며 지긋이 미소를 보이는 모습이 마치 박찬수씨의 작품인 '맞이동자'의 미소를 보는 듯 하다.

하나라도 더 알고 익히기 위해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내는 박찬수씨는 \"제 작품을 보는 순간만이라도 안식처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드는 것이 소망입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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